랑종 후기 (스포 주의)

내가 셔터의 전체적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고, 나홍진 감독 작품을 곡성만 봤는데 그 조차도 이상한 스포를 당해서 제대로 즐기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원래라면 이런 영화는 거들떠도 보지 않을텐데.

잘 몰라서 랑종 리뷰를 몇 개 봤는데 나홍진 감독은 원래 인간을 한없이 무기력하여 신의 힘 앞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운명을 피할 수 없는 존재로 묘사를 하는 듯 하다. 나와는 굉장히 안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자체만 놓고 보면 회수되지 않은 떡밥이 많은 것 같고, 별 무서운 요소는 없으며 쓸데없이 선정적이고, 페이크 다큐 형식을 가졌으나 그러한 방법을 택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감독의 의도를 알 수 없는 장면들도 좀 많은 것 같다. 특히 경악스러웠던 장면은 극 중 밍이 하혈할 때 카메라맨이 살짝 열린 화장실 문 사이로 관음충처럼 정신없이 피를 닦고 있는 밍을 담는 장면이 있었다. 밍이 하혈하느라 매우 초췌해진 시기에 본인의 직장에서 다양한 남자들과 성관계를 갖는다는 설정, 애기가 빙의한 듯이 행동하며 아기 신발을 탐내는 장면, 퇴마 의식 전 키우던 반려견을 산 채로 솥에 끓여서 뜯어먹는 장면 등등 행동의 이유도 알 수 없고, 감독이 왜 굳이 러닝타임을 할애했는지 알 수 없는 장면들이 좀 있다.

몇몇 리뷰를 보니 극 중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의 업보는 딱히 결과와 상관없다고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나쁜 일이 일어나는 데에는 딱히 이유가 없으며 인간은 주어진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그런 느낌이다. 원래 공포영화에 뭔가 대단한 메세지를 기대하지 않고 그저 깜짝 놀라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보는 것이었는데, 이 영화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메세지를 던지며 쓸데없이 선정적이고 무섭지도 않았다. 인과관계가 너무 부족한데 그거 자체가 나홍진이 노린 것이라고 하니 딱히 더 할 말이 없다. 모든 것은 나의 상상력 부족과 영화 감상을 하는 내공의 부족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지만, 어쨌든 다음부터 나홍진 감독 영화는 볼 것 같지는 않다. 랑종이라는 이름에서 기대했던 것은 그저 태국의 토속신앙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 뿐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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